14 소음해방작전 2 칼럼-나는 나

 

 

소음해방작전 2


 

엎어져도 코 깨지는 싸움을 끈질기게 했다.

소음과 사투를 벌이는 게 인생의 목적같이 핏대를 올리며 살았다. 나이를 먹으면 좀 덜할까 싶은데 갈수록 그 증세가 심각하다. '어디 좀 조용한데 없나?' 매일매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가 하루는 신록이 무참할 정도로 아름다워서 여행 짐을 꾸렸다. 단 하루만이라도 시끄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며 '하루빨리 조용한 시골로 내려가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이 부풀었다. 랄랄라, 룰룰루 콧속으로 행복이 마구마구 터져 나온다.


아, 아! 행복골인의 순간! 그 동안 소음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가 간데없이 녹아들었다. 둔내휴양림에 도착해 지정받은 숙소로 짐을 옮기니 그간 가슴에 담은 짜증, 화남, 분노……, 모든 찌꺼기가 싸-악, 달아났다. 통나무 속으로 들어가 생나무 숨을 느끼고, 완전한 탈출에 성공한 기분이 만점이다.


창이란 창은 다 열어 놓고 출입문도 활짝, 마음도 활짝 열었다. 어디선가 '피-요요요, 휘-요요요' 하고 우는 이름 모르는 새소리가 정겹다. 내가 온다고 전주곡을 울리는 구나! 현암사에서 나온 '우리 새 백 가지'라는 책을 가져올걸, 후회도 잠깐 숨 쉬는 것 하나 만으로 마냥 복에 겨워 눈물 날 지경이다. 


아, 아! 정말, 좋아! 코도 좋아, 눈도 좋아, 귀도 좋아, 피부도 좋아, 올(all) 좋아! 와 이리 좋노, 와이리 좋노! 그런데 이게 어인 일이지? 행복노래가 다 끝나기도 전에 발소리가 시끄럽게 나더니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군대행진처럼 요란하다.


가만, 이 사태가 대체 뭐지? '베개가 없어?!, 쓰레기 안 치우구 갔어?!' 어쩌고 하는 소리다.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뿌지직, 망가지는 소리가 났다. 내다보니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그냥 일상적으로 하는 소리인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고래고래 악쓰는 소리 같다.


숙박객이 머물고 간 뒤 청소를 하며 떠드는 소리다. 마음이 무참해졌다. 돈 들여가며 산골 깊숙이 도망쳐서 고요, 정적을 즐기러 온 내게 이렇게 행패를 부리다니……. 하늘도 무심하지! 쓰레기차를 피하려다 똥차에 치였다는 우스개 소리가 떠오른다. 그래도 청소가 끝나면 갈 거니 참아야지, 참는 자에 복이 있나니……. 마음을 다 잡기도 전에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30~40대의 남자 서 너 명이 축구공을 뻥뻥 차며 하늘을 울리고 있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 발소리나 말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느님, 맙소사!!! 나중엔 그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물을 찌 뿌리며 음흉한 장난질까지 했다. 한 시간쯤 긴장하며 짜증나는 마음과 씨름을 하니 피곤하다. 산책을 하려는데 갑자기 수선스런 잡음이 철수를 했다. 갑자기 고요, 정적을 탈환한 기쁨이다. 


5월의 마지막 화요일 오후 5시. 재정비를 하고 다시 행복을 만끽하려는데 그것도 잠깐이다. 아, 아! 나를 미워한 스타가 밥풀과 무궁화, 갈매기, 작대기들을 동원해 여기까지 불쌍한 나를 쳐부수러 온 모양이다. 내다보니 차에서 끊임없이 전투 병력으로 보이는 무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스, 박스, 박스들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들이 '고지가 저기다!' 하며 나를 옥죄여 왔다.


이럴 수가! 이제는 완전히 전쟁터가 될 거다. 씻고 주물러 불을 피우고 지글지글 냄새로 우선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나면 고성방가, 니나노, 부어라 마셔라! 노새, 노새, 젊어서 놀아! 어쩌고 하다가 밤새 화투소리 짝짝, 쌌다! 먹었다! 하며 공격할 것이다.


안절부절, 이 사태를 어쩔까? 아이고, 걱정 시작하니 또 한 차가 들어오고 있다! 별을 단 장군이 아무래도 지원 병력을 이쪽으로 더 투입한 모양이다. 미리 항복해 버릴까? 망가진 계획, 이미 상처 입은 머리, 이미 지불 한 돈, 어쩔까? 저들이 포로협정을 순순히 지켜 줄까? 이런 낭패가!


강원도 둔내까지 도망 와서 이런 망신살로 되돌아 갈 수만은 없다! 비장한 각오로 궁리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 않나! 끙끙대며 지원 요청할 데 없나? 그새 찌근거려 너덜너덜한 머리를 점검해 본다. 얼마나, 몇 시간이나 견딜 수 있을까? 실망과 공포가 몰려든다! 그사이 적들은 포진을 하고 규칙도 없이 일어서서 떠들며 돌아다니고 연기를 피워 댔다. 완전히 나 같은 존재는 쉬었다가 그저 조무래기 병사 하나로 한방에 날려 버릴 기세다.


우선 심호흡으로 신체무장을 했다. 밖에 나가 10여 동 되는 다른 통나무집을 어슬렁거렸다. 관리인이 퇴근하기 전에 막사를 바꿔 달라고 해 봐야지! 내 궁리를 비웃기라도 한 듯 적들의 소란스러움은 조금씩 떨어질수록 더 크게 들려 왔다. 다 돌아보기도 전에 알았다. 최전방과 멀어질수록 소음이 울려 퍼져 더 컸다.


완전 실패다! 우야꼬? 전생에 얼마나 많은 죄를 졌기에 이처럼 팔자가 기구할까? 아니다! '팔자는 타고나고,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다!' 맞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경험을 되살려 차분히 연구하자. 재수 좋으면, 그래 재수있으면, 오늘의 운세에도 오늘은 내생에 최고의 날이라고 하지 않았나? 믿어 보자. 믿는 자에게 복 있을진저!


먹고 나면 혹 참을 만큼 시끄럽다면 다행일 텐데, 그렇다면 정말 다행일 거야! 세상에! 참을 만큼 소란스럽다니! 어이구 내 팔자야! 이런저런 생각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싸안고 기력도 없이 적들의 동향을 살피는데 아, 아! 정말 완전히 포위당하고 말았다.


입구에 있는 유스호스텔에도 학생들이 단체로 수학여행을 왔는지 쿵쿵 달려드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이 욕지거리를 하다니! 핸드 마이크로 '야! 이놈들아, 두 줄로 달려! 그렇지 않으면 앉은뱅이로 기게 할 거다! 야! 야! 임마! 너! 똑바로 못 뛰엇!' 거기엔 이놈들만 있는 게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이년들도 있다. 아, 아! 내 인생에 단 하루도 소음에서 해방할 수 없는 것인가.


완전히 대 공포탄에 질려 변변히 싸워 보기도 전에 으악, 원자폭탄 같은 시끄러움에 폭삭 전멸 당했다. 어떻게 아침이 왔는지……. 아침에 일어나려고 하니 이미 내 몸은 산산조각이 나 여기저기 찢긴 채로 널브러져 있고, 아직도 무서움에서 헤어나지 못한 두 눈만이 벽에 짝 붙어 통나무 속 풍경을 보태고 있다. 고색창연한 아침햇살이 그것들을 아무 감정 없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칼럼-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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