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그 인간이 이 양반? 수필집 용인, 용인사람들


 

그 인간이 이 양반?



“아,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여길…….”

은행에서 마주친 이에게 악수를 청하니 두 손으로 받아 나도 두 손으로 반겼다. ‘아는 체’하니 ‘모르는 체’해서 민망했다는 충고를 들은 뒤라 낯이 좀 있다싶어 일단 인사부터 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속담처럼 모르는 체해서 상대방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 낫지 않나싶은 것이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강원도 억양의 남자가 사과했다.
“네? 무슨 말씀…….”
“생각해 보니까 그게 좀 그렇더라구요.”

말인즉슨 어제 행사장에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했는데 좀 지나쳤다는 것이다. 게다가 동갑이고 친하다고 여겨 반말을 했는데, 상대방 마음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벌컥 화를 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사과를 했다.

“어머? 그럼 어제 그 인간이 이 양반이에요?”
그때까지 맞잡고 있던 두 손을 홱, 내쳤다.
아이구, 이 밴댕이 소갈머리 보여요?

“세 번씩이나 볼 때마다 ‘어이, 어이’ 하며 사진 찍으라고 하니 화가 좀 났어요.”
“난 그저 동갑이라, 친구처럼 생각해서 반가운 마음에 그랬지요.”
“동네사진사도 아니고, 더군다나 동갑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림이 보이시나요?

사과하는 사람한테 멋지게 사과 받고 끝내면 될 걸, 다시 미주알고주알 따지고, 따따부따 떠들어대니 참 피곤하겠지요? 어디선가 내 신상명세를 듣고 동갑이라는 데에 친밀감을 느낀 모양이다. 친하다고 여겨서 말을 붙였는데 그만, 사람 많은데서 감정처리를 잘 하지 못하고 화를 냈으니 딴엔, 화가 났을 텐데도 끝까지 따지고 드는 내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그 인간이 이 양반’ 사건(?)을 겪은 후에 동네친구처럼 지낸다. 알고 보니 박력과 의리가 넘치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다. 손재주가 뛰어나고 만능스포츠맨이며 가무를 즐길 줄 아는 팔방미남인 남자. 강원도사투리의 구수한 말투에 인정이 뚝뚝 넘치는 사람. 따뜻한 가슴으로 이웃을 돌보는 이 사나이의 이름은 김성기다.

“처음엔 이런 뭐 같은 게 있나 했지요. 아, 근데 다음날 날보고 반기니, 성질은 뭣 같아도 성격은 좋은가 보다 했지. 하하하.”
다투면서 크고, 싸우면서 정 쌓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나중에 하는 말이 그날 마주쳤을 때 좀 당혹스러웠단다. 그런데 환하게 웃으며 반기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며 ‘껄껄’ 웃었다.
‘어, 어! 그게 아닌데…….’

이상하게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못할 뿐만 아니라 분간도 잘 못해 번번이 고심한다. 한국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면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 하는 판이니 외국영화를 보면 완전히 <어리버리>다. 이런 판국이니 <한판승>한 사람이건 <두판승>한 사람이건 기억하지 못해 벌어진 해프닝이다.

어디 이뿐인가.
어느 자리에서 모욕을 받은 일이 있다. 함께 있던 사람들도 얼굴을 찡그린 사건이다. 내심 ‘내 인생의 원수!’라고 부르짖다 못해 만나는 사람마다 ‘내 인생의 원수’라거나 ‘수지의 원수’ 하며 한동안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한 2주일 뒤쯤에 어느 행사장에서 문제의 그 원수를 만났다. 당연히 얼굴기억을 못하니 반기며 악수를 했겠지요.

“아이고, 언니! 웬수라더니?!”
“어? 웬수? 무슨 웬수요?”
“아, 언니가 접 때 화나서 웬수라고 한 사람이 저 아줌마예요.”
“정말?”

평소 가깝게 지내는 이가 귓속말을 하며 어이없어 했다. 물론 그 불쾌한 사건은 지금도 생생하게 상처로 남아있다. 그저 낯이 익고, 더군다나 행사장에 모인 사람들이니 인사를 한 것이다. 한심한 건지, <두심>한 건지 그도 아니면 <대심>한 건지 답답하지요? 이런 판국이니 사람들이 이상한 평가를 해도 할 말이 없다.

성질은 뭣 같아도 성격은 좋다?
이 <뭣>이 뭘 말하는지 다 아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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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 시인이 만난 용인, 용인사람들

      박남 / 문학관(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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