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고문 받을 준비 다 하셨어요? 칼럼-꽁트칼럼



고문 받을 준비 다 하셨어요?



당신 한복 해내 놓으래요.

다들 이맘때면 미치죠?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억수로 스트레스 받아요. 집집마다 다양한 사연들이 있지요. 고부간갈등이야 태곳적부터 있어 온 것이니 새삼스럽게 떠드는 거 자체가 식상하지요. 지지고 볶고, 이때만큼은 정말 여자로 태어난 게 철천지원수랍니다. 그 중에서도 명절이 곤욕 중에 곤욕이지요?


명절 때마다 각양각색으로 벌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말이죠. 제각각 사연으로 가슴에 응어리가 있지요. 별다른 사연이 없는 집은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할까요. 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도 별 신통한 방법이 없더군요.


명절증후군이라고 하나요?

삭신이 빠개지도록 여자만 일한다고, 여자도 며느리라는 이름의 여자들 생고생이 얼마나 많아요? 명절 때만 아픈 며느리들 너무 많지요? 부부싸움도 하구요. 우리 집은 보통 집들하고는 좀 사연이 달라요. 대개 시어머니하고 동서들 때문에, 혹은 시누이 때문에 골머리를 썩잖아요? 그런데 우리 집은 시아버지 때문에 그냥 돌아 버려요.


“애아범이 옛날에 나한테 그랬다. 험! 험! 거, 뭣이냐-!”

시아버님이 ‘옛날에 아범이~’ 하면서 말을 꺼내기 시작하면 정말 오금이 저립니다. 애아범이 한 말이면 애아범한테 할 일이지 왜 저만 보면 ‘애아범, 애아범’ 노래를 불러대는데 정말 죽을 맛입니다. 그것도 나를 만나기 전에, 그 옛날 고려 짝에 한 말을 늘어놓을 때면 머리가 지끈지끈해요. 그 고려 짝이라는 것이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아버님 구두를 해드리겠다고 한 이야기까지 끄집어내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할 때는 정말 의심이 간답니다. 하도 답답해 남편한테 물으면 기억도 안 난다니 정말 환장할 노릇이지요.


집안살림살이는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챙기면서 돈 내놓으라고 협박을 한답니다. 남편은 생각도 안 난다니 아무 말이나 끄집어내면 그만이지요. 그 잘난 ‘애아범’을 들먹이며 생짜를 놓으면 할 말 없는 거 아닌가요. 초등학교부터 끄집어내고 한 말 또 하시며 괴롭힙니다. 군대 갈 때 그랬다, 군대에서 그랬다, 전화로 말했다, 밥 먹으며 말했다면서 해내놓으라고 야단이시니 미치고 맙니다. 


그 옛날 당신아드님과 어떤 약조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왜 나한테 그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요. 화가 나서 남편한테 따지면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당신이 좀 참으라’고 하는군요. 장장 20년 넘게 참아 왔습니다. 아끼고 아껴 돈 모으면 뭐합니까. 어떻게 알고 그러시는지 달랑 아버님 수중에 들어가고 마는걸요.


하도 시달려 나도 한번 꾀를 내려고 마음먹었어요.

남편한테 물었죠. 혹, 아버님이 뭘 해주겠다고 한 일은 없는가 하고 말이죠. 그랬더니 이 답답한 양반이 픽-, 웃어넘기더군요. 하기야 시시콜콜 이런저런 걸 다 기억하고 있다면 나하고 살면서 싸울 일도 없을 겁니다. 도대체 나한테 한 말도 다 까먹는 사람이니 뭘 기억하고, 말고 있겠어요.


어쩌다 거절이라도 할라치면 온갖 유치찬란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단골꾀병으로 망신을 주지요. 구급차를 부르고 온 동네방네 아들내외가 오지 않는다고 방송을 합니다. 아버님 뒤치다꺼리에 울화통이 넘쳐도 어찌하겠어요. 당신이 만족해야만 그만 두니 완전히 고문입니다. 돈 없으면 자식이 아니라 원수랍니다.


이번 추석만 해도 그래요. 한복을 해 달라고, 아니 해 놓으라고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남편하고 대판 싸웠답니다. 명절 때마다 시아버지한테 들어가는 돈 때문에 살림할 기분도 나지 않습니다. 계절마다 유행이 아니라면서 얼마나 때때 거리시는 지. 시어머니는 거지같은 꼴을 해도 무신경한 시아버지는 오로지 당신 입성만 따지고 삽니다.


결국 억지로 한 벌 해 드렸지요. 떼쓰는 애들이라면 한대 패 버리고 싶은데 그것도 아니니 죽을 맛이지요. 머리가 지끈지끈한 채로 명절을 맞이했답니다. 다들 그 때때옷 때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루를 보냈지요. 시아버지만 때때옷입고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얼굴로 보냈답니다. 시어머니 몰골은 말이 아니지만 어찌 해 드릴 방도가 없으니 죄인심정으로 보내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화가 뻗치던지…….


예전에 컴퓨터도 아이들보다 아버님 걸 먼저 장만해드렸으니 말해 뭐하겠어요. 컴퓨터뿐일까요? 핸드폰에, CD플레이어에, 최신식 전자제품은 물론이고 먹는 거까지 모두 사다 받쳐야만 직성을 푸시는 양반입니다. 예전에 교사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더군요. 어찌나 당신만 위하는지 세계대회에 나간다면 일등할 겁니다.


어쩌다 서울에 올라오셔도 집안에 뭘 들여놨나 염탐하러 오시는 거 같습니다. 오로지 무엇이든 사야 기분이라도 좀 맞추는 거라고 흐뭇한 얼굴을 대합니다. 어떤 날은 팸플릿까지 챙기고 신문에 난 광고쪼가리를 들고 와 안내하라고 호통입니다. 물론 사 내놓으라는 심보지요. 아이고, 긴긴 세월 시달린 걸 생각하면 분통이 터집니다.


별별 상품도 다 있더라고요.

아이들도 아니고, 나이 드신 분이 어찌나 신제품을 찾으시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어요. 오로지 당신자신만 아시니 시어머니를 챙겨 드릴 여유가 없습니다. 다행이 시어머님은 별 말이 없어서 그냥 모른 척 그냥 지나가지만 켕기는 건 켕기는 거죠. 우리는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음식도 사서 보내라고 하시고, 몸에 좋다는 건 다 챙기고 정말 환장합니다.


신제품이라면 남편과 그 고려 짝에 한 약속이 아니니 걱정 없을 거 아니냐고 하실 지도 모릅니다.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꿩 대신 닭’도 아니고 물물 교환하듯 뭐 대신 내 놓으라는데 할 말 없지요. 중절모 사준다고 했다, 중절모 대신 뭐 사 내놓아라, 하시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뭔 말을 하겠어요.


앞으로 결혼할 여자들은 남편 될 사람이 집안어른과 사전에 무슨 약조를 하지 않았나, 따져 보고 결혼해야 할걸요? 아니면 결혼 전에 부모님께 미리 새로운 약조를 해 두던가 말이죠. 아니면 빌어먹을 채무관계를 다 끝내고 난 뒤에 결혼을 하던가, 무슨 방도를 내야 하더라고요.


아이고, 정말 환장해요.

날도 쌀쌀한데, 얼음물이나 한잔 들이킬까요? 네?!


[꽁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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