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미스터 리의 리포트 꽁트*꽁트



미스터 리의 리포트



“이거 참 큰일이야.”

피 선생은 또 조간신문을 펼쳐 들고 그 특유의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피 선생이 아침마다 신문 보며 흥분하는 것은 일일행사 중의 하나기 때문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요?”

“이것 좀 봐. 쯧쯧, 이래가가지고야, 원…….”

새로 입사한 미스 한이 아직 습관이 되지 않았는지 벌써 며칠 째 피선생의 흥분에 맞장구를 쳤다.


“미스 한은 뭐 느끼는 거 없어요?”

“…….”

피 선생이 건네 준 신문을 보고 난 미스 한은 그저 묵묵할 따름이다.
또 저번처럼 자신의 의견을 말하다가는 묵사발이 될 게 뻔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잔뜩 움츠려서 우리에게 구원의 눈치를 보내고 있었다.


“아니, 올림픽인지, 아시안게임인지 뭣 때문에 하는지 알 수 없어. 이건 뭐 질서 캠페인을 했을 때도 그렇고 꼭 잘나가다가 삼천포에 빠진단 말야. 이런 쯧쯧…….”

나는 뭐기에 저리 또 야단인가 싶어 피 선생이 가리키는 곳을 대충 훑어보았다.
기사내용은 요즘 한창 떠들썩한, 한강에 띄울 모형선에 관한 내용이다.


“지난번 질서 때도 질서는 편하고 한국인의 긍지고 어쩌고 하다가 꼭 끝에 가서는 외국인이 보면 얼마나 한심하게 여기겠느냐는 둥, 얼마나 미개인의 나라처럼 보겠냐고 아우성이더니 이번 한강모형선도 그렇잖아. 외국 사람이 볼 때 어떻겠냐고 아우성이잖아.

이건 뭐 한국인의 긍지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아니, 한강유람선은 우리들을 위해서 만드는 게 아니고 외국 놈 호강 시킬라고 만드남. 기고하는 자들의 의식이 문제야. 이렇게 자기나라 국민을 무시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니 외국 사람들이 보면 어떻겠어. 한국인은 남의 눈치만 보는, 허례허식에 가득 찼다고 안 그러겠어?”

나는 피 선생의 마지막 말에 쿡! 하고 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고 공연히 코만 쥐어뜯었다.


피 선생은 언제나 그랬다. 남의 단점은 누구 못지않게 잘 꼬집어 내면서 정작 자신의 단점은 도무지 모르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출판사일로 외출하다 돌아오는 길에 차 한 잔을 같이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피 선생의 무지와 그 무지의 당당함에 얼굴이 달아오르고 또 한편으로는 웃음이 터져 나와 잠자리에서도 킥킥거릴 정도다.


“아니, 이게 뭐예요! 요즘이 어떤 땐데.”

찻값을 지불하러 나오다가 피 선생은 카운터의 아가씨에게 고함을 쳤다. 좌중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우리들에게 시선을 마구 내다 꽂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점잖은 사람들이 오는 커피숍이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나는 카운터의 아가씨와 피 선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당신은 감정도 없어요? 이런 때 일본노래를 이렇게 크게 틀-,”

나는 순간적으로 피 선생을 밀어내다시피 해서 밖으로 나왔다. 피 선생은 밖으로 나와서도 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어 댔다.


“일본 노래가 아니고 불란서 노래예요.”

“그래요? 아니, 근데 왜 꼭 일본노래 같지……?”

그리고 피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휘적휘적 그 특유의 팔자걸음으로 앞서 걸었다.


도무지 무안이라든가,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선 무관한, 컴퓨터 같은 인간이다. 피 선생의 팔자걸음 또한 유별난 자기이론이 있다. 양반의 피가 어쩌고 하는데 아마 그것은 자신의 성씨에 대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함이 느껴졌다. 아무도 마음 쓰지 않는 천방지축마골피……. 그 중에서도 제일 꼴찌 성이다. 그 방면에서 말이다.


“나는 비록 일본에서 공부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선 전혀 매력이 없어요. 일본 놈들이란 다 자기식이라니까.”

피 선생은 나와 사석의 자리에서 일본유학에 대해 가끔 말했는데 피 선생의 말로는 일본유학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건지, 소외감을 느끼는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일본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하다가도 나중에 가서는 일본을 욕하는 것으로 말을 끝냈다.


그런 피 선생이 한번은 편집인들의 모임 겸 망년회자리에서 큰 사건을 일으켰다.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서 요즘 유행하는 일본가요를 부른 것이다. 그건 마치 불필요하리만치 잔뜩 점잖은 체면을 과장해서 표현하다가 막판에 가서 방귀를 뀌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간 좌석은 모두 똥 먹은 얼굴들이어서 서로 상대방 얼굴만 마주보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 피 선생이란 작자는 자기 흥에 겨운 듯 일어로 말을 했다. 물론 개중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일어를 알아서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날은 모두 예외였다. 왜냐하면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으로 한바탕 흥분을 한 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예외 없이 피 선생이 가장 흥분해서 발언을 많이 하였기에 모두들 과격한 그의 표현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그로인해 배신감을 더욱 맛보아야 했고, 따라서 하나 둘 자리를 떠 그 날 망년회는 정말 망쳐버렸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지 정확히 한 달 후 그 독설가에다 인정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피 선생이 드디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분사분해지고 상냥하고, 완전한 변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피 선생은 나이가 흠이지 곱상한 얼굴에 애교가 살살 넘치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가씨다.


우리들은 모여서 그녀의 갑작스런 변신에 수군대기 시작했으며 예전처럼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우리들의 예견을 박차고 어느 날 점심시간에 선언하였다.


“조만간에 이 회사를 관둬야 할 것 같아요.”

우리들은 그녀의 소리에 하나같이 놀라 ‘네-에?’ 소리를 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결혼할 거 같아요.”

우리들은 또 한 번 ‘네-에’ 하며 응수하다가 ‘'네-에??’ 하고 놀라 다시 반문했다. 서른 하고도 미운 일곱 살을 보태는 나이에 결혼이라니 좀 놀라웠다.


그 후로 들리는 소문은 우리들을 더욱 놀라게 하였다. 그것은 상대가 자그마치 5살이나 아래에다가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온 모 그룹의 엘리트사원이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의문의 나날을 보내는 대신 피 선생, 그녀의 모습은 날마다 달뜬 소녀처럼 변해갔다.

큰소리치고, 화 잘 내고 남의 말을 무시하고 변덕스럽던 그녀가 어느새 부드럽고 화사하고 남의 말을 경청하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을 즈음 우리들은 그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시들해져 가고 있었다.


“어머! 저기 좀 봐요. 어머멍? 아니, 피 선생님 아녜요?”

우리들은 미스 한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분명히 피 선생이다. 그 특유의 팔자걸음을 휘적이며 나타났다.
화났을 때의 얼굴표정이 사방 10미터는 온통 불안에 떨게 만드는 그 모습으로 길 건너편에서 사무실을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조바심을 내며 전부 자리에 가서 가슴을 두근거리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고 사건은 그 다음 날부터 벌어졌다. 쾅쾅거리고 분기를 100m까지 풍기며 예전보다 더한 피 선생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은 또다시 불안해했으며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느낄 뿐이지만 어느 누구도 물어보지 못했다.


“미술전람회를 보러 갔는데 거기에서 옛날 학부 때 동창생을 만났기에 반갑게 악수를 했더니 날 의심하잖겠어요? 뭐 그런 시시껄렁한 사내 녀석이 다 있담. 아니 그래. 미스터 리는 그게 이상해 보여요?”


우리 나름대로 추리해본 결과 그래 어느 사내 녀석이 약혼녀가 동창생과 악수 좀 했다고 약혼을 취소할까, 하는 생각에 합의를 보았지만 그 내막을 알 수 없었다. 나이 차이를 어쩌지 못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능력과 개성을 못내 아쉬워했다.


나이만 아니라면 멋진 여자라고 우리들은 그녀를 모두 동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바로 꽃피는 봄이다. 피 선생 그녀가 결혼 날을 잡았다는 말을 들은 날로부터 일주일쯤에 우리는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고 말았다.


“아니,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뭐 어떻다고 한보따리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걸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준단 말이에요. 내가 병신도 아니고, 차라리 고자한테 시집가는 한이 있어도 그 녀석은 안돼요. 전화 끊어요.”


수화기가 내동댕이쳐졌다. 내 귀에는 마치 학생을 꾸짖는 듯 한 피 선생의 고함소리 ‘그 녀석은 안돼요’가 크게 흔들리고, 이어 그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 그녀는 여전히 팔자걸음을 휘저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타인을 나무라고 조간신문을 펼쳐들어 ‘쯧쯧, 아니 이래가고 원, 쯧쯧’을 연발하는 서른일곱의 노처녀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1986. 3.


[꽁트*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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