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젊은 사내 꽁트*꽁트

 


젊은 사내



그는 오늘도 늦은 아침에 찬물 한 대접으로 정신을 일깨웠다. 어젯밤의 일이 씁쓰레하게 떠올랐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그는 자신을 한탄했다. 단지 몇 푼을 벌기위해 십만 원을 하룻밤 새에 날려버린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수용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멋진 분이 대한민국에도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미스 홍의 은근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쳇, 하고 코웃음을 치며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생각하지 말자고 했지만 자꾸 산다는 것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 배고파서 허둥댔던 때를 생각하자. 아무려면 어떤가.


그는 불과 한 두 달 전만해도 배가 고파 빌어먹던 것을 떠올리고 자신을 위로하려고 애썼다. 어떻게 해서든지 경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위해선 무엇이든 다할 수 있으리라고 다짐했다. 가난에서 하루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리 그녀가 지금까지 그가 지내온대로 성실하게 살자고 해도 그것은 푼돈에 지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나이에 아르바이트 식으로 잡일이나 하면서 행복해지리라고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이번 일처럼 손쉬운 건 없었다. 일만 잘되면 건당 한 장이라고 했으니 그는 막연히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만 잘되면 룸살롱의 지배인쯤 되리라는 기대감이 그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되었다. 지난 세월의 소금기 같은 건조함과는 이제 굿바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나도 봉을 잡은 거야. 신이 도우신 거지. 그만큼 고생했으니 하늘도 우리들 사랑에 감동한 거지. 뭐야. 그는 혼란과 자책이 들 때마다 혼자 중얼거렸다. 장모님도 이젠 괄시하지 못하겠지……. 그는 금방이라도 부자가 된 것만 같았다.


“성덕씨 요새 변한 것 같아요.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그를 만나면 늘 똑같은 소리로 물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정신의 지주 같았다.


“경혜, 몇 년 만 기다려 줘. 그럴 수 있겠지?”

그는 그 말을 하면서도 미안하고 자신이 없었다. 벌써 몇 년째 계속해 온 말인가.


“저는 호사스런 결혼식을 원하지 않아요. 초대할 사람도 없고, 성덕 씨만 좋다면 고생할 각오도 돼있다고요.”

그녀와 그는 만나기만 하면 다툼으로 시작해서 다툼으로 헤어졌다.
그래도 그는 그녀가 그의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


“자, 이젠 오픈할 날짜도 다가오니 이번 주 내로 빨리 결정했으면 좋겠네. 될 수 있으면 기똥찬 애가 좋겠지. 자네만 믿네.”

사장을 이제 은근히 재촉하고 있었다.
그는 사장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마치 똥 묻은 돈 덩어리 같군,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성덕이 요즘 왜 그래? 미인계에서 놀더니 혼이 빠졌군.”

최가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오늘은 결단코 결정을 내리리라고 그는 다짐했다. 크리스마스도 점점 다가오고 사람들은 붕 떠 있는 것이 마치 활기찬 아메바 분열과도 같았다. 그는 왠지 쓸쓸한 감정을 느끼면서 <문화사치감정>이라고, 자신의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무시하려고 애썼다.


그는 어렵게 구한 이 직업을 포기할만한 능력도 없거니와 더군다나 경혜를 생각할 때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는 최가와 함께 제 3한강교를 막 빠져 나오면서 경혜!, 하고 나지막이 불러 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다. 최가는 능숙하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목적지에 도달했다.


“아유-, 강 사장님 오셨어요?”

마담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하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이 일만 잘 끝내면 새로이 시작할 수 있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다.


“요 깍쟁이 좀 봐. 미스 홍 좀 불러 줘!”

“아이, 강 사장님도 뭐 그리 급해요. 얘-, 강 사장님 오셨다-. 홍아! 아니, 얘가 왜 이렇게 늦지?”


“아니, 서방 오셨는데 뭘 하느라고 이렇게 늦었어?”

최가는 미스 홍이 나오자 자못 화났다는 듯이 눈을 부라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오늘은 술을 삼가고 싶었다. 대신 장소를 옮겨 미스 홍과 결판을 내리고 싶었다. 미스 홍을 결정하기까지 쓴 돈을 어림잡아 계산해보니 삼백여만 원은 되는 것 같았다. 채 한 달도 못돼 삼백여만 원이라면 큰 물주임에 틀림없으리라. 미스 홍 하나면 우리와 같이 헤픈 족속들은 몇 십 명은 잡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 직업이랄 것도 없는 이 일을 시작하며 많은 혼란이 그를 수없이 괴롭혔어도 경혜를 생각하면 참을 수 있었다. 이 사장의 말대로라면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인 것이지, 노력이라든가 근면, 성실이란 단어는 사전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룸살롱 하나를 오픈하는 데도 치밀한 작전이 있는 것이다.


좀 치사하다고 생각했으니 이사장 말대로라면 쉽게 돈을 벌려면 다른 영업장소에 가서 적당히 사장행세하고 알맞은 영업사원 하나 물색해 오는 것뿐이다. 당장은 돈이 들어가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따지고 보면 그도 그럴 듯 했다.


미스 홍을 이 사장이 경영하는 살롱으로 옮긴다면 미스 홍한테 딸린 단골고객은 전부 이곳으로 몰릴 테니 미스 홍을 데려오는데 드는 돈이 얼마이건 간에 그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금액이다. 그는 지금까지 사장 아닌 사장행세를 하며 가끔은 착각 속에 빠져 들기도 했다. 차를 몰고 다니며 최가와 함께 젊고 유능한 사장행세를 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가진 자의 권세를 마음껏 누려보는 스릴도 있었다. 그러나 왠지 그의 마음 한 구석은 늘 허전했다.


그런 날이면 경혜가 더욱 그리워지기도 하고, 이곳저곳 술집 아가씨들과 어울려 쓸데없는 허풍과 그럴 듯한 이야기로 심금을 울리는 연기를 하다보면 잠시잠시 자신의 본 모습을 잊어버리기도 하였다.


“강 사장님은 페미니스트적이어요. 왜 이런 분을 여태 못 만났을까?”

아가씨들은 그의 재담과 외모에 많이 끌렸다.

훤칠한 키에 건장한 체격, 게다가 20대 후부터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갓 서른을 넘겼는데도 보통 5~6살 내지는 경우에 따라서는 10년이나 더 올려 보았다. 이젠 영동의 웬만한 집들은 외상도 턱턱 주는 고정고객이 될 정도로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는 몇 십만 원씩 술값으로 사인을 하면서도 수중에는 한 푼도 없는 건달이라는 현실이 그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인간답지 않을까. 그는 지금하고 있는 짓거리가 마치 악몽을 꾸는 것만 같아 두려움도 일었다. 이사장은 이 일만 잘되면 자신이 경영하는 곳에 취직을 시켜 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그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고, 그 방면의 일이라면 페인트공이라도 즐거웠다. 그는 언젠가 기반을 잡게 되면 경혜와의 보금자리도 자신이 직접 설계한 집에서 살고 싶었다.


“요즘 뭘 하느라고 하숙집에 전화해도 없데요?”

그녀는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응, 조금만 더 기다려 줘.”

“대체 뭘 하러 다니기에 바빠요? 아줌마 얘기로는 매일 술에 취해 새벽에야 들어온다면서요? 혹 여자가 생긴 게 아니냐고 하던데…….”


“경혜!” 

그는 그녀의 말을 막았다.


“경혜, 맹세코 그런 일은 영영 일어나지 않을 테니 그 점은 염려 놓아.”

그는 그녀의 아픈 곳을 괜히 긁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내가 뭐라고 이 여자가 이렇게까지 헌신적일까, 의심했지만 그녀의 가정 사정을 알고부터는 깨끗이 사라졌다.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충격이 모든 남성들에게 마음을 열어놓지 못하는 결점이 되고 말았다는 고백을 듣고 부터는 더욱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입버릇처럼 자신의 남편이 자기 아버지와 같은 면이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한다면 그 순간부터 끝이라고 강조하며 은근히 못을 박아 두려고 애썼다.


“아니 이런 이른 시간에 웬일이세요?”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최가와 함께 미스 홍을 만나러 갔다. 오늘에야말로 결판을 내리리라 다짐한 것이다.


“오늘 미스 홍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지.”

그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미스 홍은 옆에 바짝 앉아 분 냄새를 폴폴 풍기며 유혹을 하듯 몸을 꼬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으며 경혜를 떠올렸다. 사랑이 아닌데 내가 왜 이리 자책할까. 설마 이런 것도 용납하지 못할 경혜는 아니겠지. 그는 미스 홍을 더욱 세게 끌어당기며 일부러 끈끈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네?”

미스 홍은 의외로 난색을 하며 떨어져 앉았다. 그리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이제 보니 당신 호리꾼 아냐? 어째 좀 수상 터라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그동안 속아 주는 척 했더니-, 언니! 언니! 여기 좀 와 봐요. 뭐? 아이티 상사? 흥 뭐 이런데 있으니까 봉사인줄 아나 봐?!”

미스 홍은 뭐 어쩌고 하면서 당장 술값 내놓으라고 악다구니를 써댔다.

술값? 술값이라니? 그건 이 사장이 꼬박꼬박 송금시켜 주지 않았나? 그는 별안간 일어난 사태에 대해 의아했다. 최가를 찾으니 어느새 없어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참 봉변을 당하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경찰서였다. 알고 보니 처음 몇 번은 송금되었는데 그 뒤엔 보내지 않은 것이다. 그는 밖에 나가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겠노라고 큰소리쳤지만 알고 보니 이미 이 사장도 행방을 감춘 뒤였다. 그는 무전취식, 사기, 영업방해 등등 많은 죄로 고소를 당했다. 경혜말대로 작게 먹고 성실하게 지내는 것인데, 하고 후회를 하였다. 그래, 지금 이라도 늦지 않았지. 날품을 팔아서라고 경혜말대로 성실하게 사는 거야.


그는 순간의 잘못 판단으로 인해 이 일이 이 지경에 이르는 것처럼 그의 이런 행위가 그녀에게도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그를 몸서리치게 했다. 그는 행여 그녀가 기다리지 못하고 집안에서 권하는 데로 갔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는 유치장에서 나오면서 그녀를 찾아갔다.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까. 이제라도 나를 찾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는 그녀를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처음 경혜를 만났을 때처럼 또 경혜말대로 성실하고 건강한 사랑을 하리라고 다짐하며 그녀의 집 앞에 다다랐다.


“경혜!” 

그녀 대신 그녀의 어머니가 그를 맞이했다.
언제나처럼 그녀 어머니는 그를 냉담한 어조로 맞이했다.


“내 뭐라 그랬나. 우리 아이완 안 된다고 했지. 그 애가 하도 조르기에 사람 하나만 보자고 했더니……. 자네 알고 보니 사기꾼이더군. 내 어째 허우대는 멀쩡해서 직장을 못 지키나 했더니 그런 허황된 짓을 하고 다니니……. 직장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 하지만 일확천금을 얻자고 하니 그런 것 아니겠나, 내 이제 와서 이런 말 할 것까지 없지만 우리 아이는 이제 생각하지 말아주게.”


그녀의 어머니는 원망에 가득차서 마치 남자란 다 믿을 게 못 된다는 자기 한탄의 소리와도 같이 계속되고 있었다.

1986. 1.


[꽁트*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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