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사는 연습 꽁트*꽁트



사는 연습



도무지다.

그는 이곳에서 탈피하고 싶으리만치 생활에 허기가 져 있었고, 주위의 문제들을 피해가고 싶어 했다. 직장에서도 집안에서도 모두 떨어져 훌훌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일종의 도망 위에서 헤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걱정은 걱정대로 남아있고 그만큼 불만도 불만대로 커서 그의 얼굴은 지난 1년 새 참 많이도 변해버렸다. 그런 모든 문제들이 급기야는 어느 날 모두들 비장한 무기를 들고 쳐들어오듯 그에게 일제히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회살 뭘로 알아? 이렇게 우롱하고 다녀도 되는 거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상관이 쉬지 않고 찐빵을 먹여댔다.

매일 먹는 상관의 찐빵세례에 시무룩해진 그는 자기자리로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다. 왜 이럴까. 그는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깊은 한숨을 지었다.


“걸핏하면 결근이고, 뻑 하면 지각이니 그러구 어떻게 조직생활을 한다고 할 수 있겠어!”

부장은 아직도 씨근덕거리고 있었다.


지난 3년 동안 제대로 된 회사를 옮겨 다닌 직장만 해도 열 번은 넘었다. 취직이 안 돼 잠깐씩 임시직으로 일한 것도 한 3년이나 된다. 그는 이번 직장으로 열한 번째를 맞이하면서 굳게 결심한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견디리라 다짐했다. 그동안 철새처럼 지내느라고 그 나이에 흔한 주임이나 대리자리 하나 따지 못한 채 말단사원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가까운 친구 녀석들은 벌써 대리다, 과장이다 하며 명함을 돌리고, 성미 급한 녀석들 중에는 애아비가 되어 잔치 턱을 내느라 생색을 다했다. 그런데 그는 이제 막 삼십을 넘기고도 한 곳에 정착을 못하고 떠돌아 다녔다.


“그게 뭐 힘들어서 그래. 해주면 되지.”

“썩었어, 썩었어! 썩어도 푹 썩었어!”


그는 오랜만에 만난 대학동기 녀석들과 함께 한 술좌석에서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녀석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의 고민을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하기야 몇 년째인가. 매번 똑같은 고민을 하니 친구들도 고역일 거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렇게 된 건 오직 그 교육 때문이야. 하지만 대충살라구. 대충 말야.”

“그래. 그렇게 힘들게 지내느니 그까짓 것 한 장 푹-, 찔러 주지 뭘 그래. 자기돈 드는 것도 아닌데 뭘 주저하고 그래.”


“야! 임마, 그건 오상이를 몰라서 그래. 쟤는 천성이 그런 걸 어쩌냐!”

“맞아, 쟤가 아직도 순진하잖아. 그러니 어떡허냐.”


“순진이 밥 먹여 주냐. 한심한 놈.”

급기야는 자기들끼리 언쟁을 했다.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와 거리를 걸었다. 한 겨울 추위가 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부정이다, 부정이야. 이건 죄악이다.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에 가슴이 답답했다. 부정이다, 부정이야. 그건 죄악이다. 그의 뇌리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러자 경혜가 떠올랐다. 자기 돈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뭘 고민해요. 그렇다고 사장한테 달려가 털어 놓을 배짱도 없으면서, 경혜가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그녀의 말을 되새기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이 압박감을 어쩌란 말인가. 그는 이럴 때마다 번번이 자신의 무력함을 힐책하고 있었다.


“저-, 부장님. 오늘 저녁시간-,”

“뭐야?”


그는 부장의 험상궂은 반문에 벌써 주눅이 들어 식은땀을 다 흘렸다. 그는 그런 부장의 얼굴에서 처음 입사당시 그 온화하던 모습을 떠올려 씁쓸한 마음이 되었다. 고등학교 선배라 친동생처럼 생각한다며 앞으로 잘해보자던 격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자넨 다 좋아. 사람도 좋고, 더군다나 우리 경일고교의 후배 아닌가? 근데 실망이야. 도무지 납득이 안가는 부분이 있단 말이지.”

그는 현 부장을, 아니 현 선배를 쳐다보며 연민 비슷한 감정에 휩싸였다.

실망? 실망은 내가 했지……. 그는 혼자 거푸 두 잔을 비웠다. 그는 오늘 두 번이나 현 부장에게 한 말을 후회했다.


괜히 술좌석을 마련했다고 생각하면서, 차라리 톡 까놓고 말해 버릴까? 하는 충동도 일었다. 대체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죄책감도 없단 말인가?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부업으로 벌어들인다고 그 삶이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느냔 말이다. 그는 눈앞의 술잔을 현 부장에게 끼얹고 싶었다.


그는 먹고 살아야한다는 급급한 문제에 부닥치게 되자 일단 현부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다. 그는 경혜하고도 관계를 잘 유지하는 길은 일단 현재의 위치를 고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정착하고 싶다. 어떠한 형태로든 한곳에 기둥박고 살고 싶다. 그는 담배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다짐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사람을 경계해야 하다니……. 그는 자신도 점점 물들어 가고 있다고 자조했다.


생각뿐이다. 생각 하나로 이렇듯 문제해결이 쉽게 되다니. 그는 업무일지를 꺼내 오랜만에 기록했다. 실로 오랜만에 외출을 하리라 생각했다. 오늘은 거래처와 회식도 하고 모종의 숫자놀음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1. 선일공업방문(납품의뢰 건)

2. 대한상사방문(세금계산서 건)

3. 스지산업방문(4/4분기 마감 건)


그는 업무일지를 힘차게 현 부장에게 내밀었다. 현 부장은 그걸 집어 들고는 의아해 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 번도 이런 일로 외출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 부장이 뭐라 할까? 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참으면서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경혜란 여자하고는 어떤 관계야?”

현 부장이 느닷없는 질문을 했다.


“자네, 알고 봤더니 꽤 시시콜콜하더구만.”

현 부장은 의미심장한 말만 하고 말았지만 왠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경혜를 어떻게 알지? 그는 섣불리 현 부장한테 물어보기보다는 나중에 경혜한테 묻는 게 낫다 싶어 궁금함을 참았다. 그날 모종의 수작을 끝낸 뒤 돌아와 보니 의외로 현 부장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오늘 저녁 시간 좀 내지.”

현 부장은 그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 채 외출을 서둘렀다. 현 부장은 술집에서 엄청난 말로 나를 위압하고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내 사업이 요즘 자금난으로 허덕이고 있네.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자네가 도와줘야겠어.”

현 부장은 멈칫멈칫 어렵게 말했다.
그는 다 듣고 난 뒤에 그렇지 않아도 오늘 나가서 숫자놀음을 좀 했노라고 모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으하하하하하-, 역시 자네뿐일세.”

현 부장은 흥겹게 웃었다. 그는 가업으로 조그만 상점을 운영하고 있느라고 회사일은 뒷전이었다.


“뭐라구? 그래서?”

다음날 그는 경혜를 만나자마자 현 부장이 경혜를 알던데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는 엄청난 소리를 또 들었다.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를 우연히 만났어. 그 뒤로 몇 번 만나 이야기 끝에 오상 씨 이야기를 했어. 그러다 회사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그 회사 사장이 자기 아버지라잖아.

“그래?” 


“응. 그런데 친구아버지가 오상 씨를 알더래. 칭찬도 하구. 친구가 그러더라구. 왜 그런 사람 두고 결혼하지 않느냐……며,”

그는 영문을 몰라 하는 경혜를 바라보며 현 부장 얼굴을 떠올렸다.

근데 왜 갑자기 현부장이 부드러워졌을까? 그는 구토증을 느꼈다. 약자에 강하고 강자에 약하다지만 약혼녀의 친구가 사장 딸이라고 그렇게 까지 할 건 뭐 있겠느냐고 의아해하며 한탄했다.


“이거 큰일 났네.”

그로부터 몇 주일이나 흘렀을까.

현 부장이 은근히 회의실로 불렀다. 누군가가 거래처와의 부정을 찌른 모양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선 그를 의심하고 있으니 사표를 내면 자기가 윗사람에게 잘 말해서 전직을 시켜주겠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허! 이사람, 생각할 여유가 뭐 있나. 그 까다로운 임상무가 자네를 직접 부르기 전에 내가 가서 잘 말씀드리면 되지 않는가 말이야.”


현 부장은 애원하다시피 말하며 설마 선배가 거짓말 하겠느냐고, 또 그만한 잘못으로 모가지감은 아니지만 설령 퇴사시키라고 한다면 자신이 책임질 테니 염려 말라며 그의 어깨를 감싸고 동창 좋다는 게 뭐냐며 거짓사표인데 뭐가 두렵냐며 재촉했다.


그는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도 잡는다고 현선배가 그토록 마음을 써주는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한편으로는 현 선배에 대해 일종의 신뢰감도 맛보며 천천히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이틀 뒤 그가 출근하자마자 총무부에서 호출이 왔다. 그는 약간 의아한 기분으로 현 선배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현 부장은 모르는 채 외면하고 신문만 뒤적거리고 있었다. 발걸음을 옮기며 뒷골이 당겼다.


“뭐 사내가 그깟 일로 사표까지 쓰고 그러나, 정 힘들면 당분간 쉬어 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자네 상관이 그러니 그런가 할 뿐이네.”

그가 총무부로 가자 총무과장은 이상하다면서 사표수리가 됐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는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는 바삐 관리부 문을 열며 소릴 쳤다.


“현 부장, 현 부장 어딨어?”

“최오상 씨 나간 뒤, 바, 바로 무슨 급한 일이 있다며 바삐 나가시던데요?”

여사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놀란 표정으로 떠듬떠듬 말했다.


“야-! 세상 놈들아, 느들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는 한 겨울에 차가운 소리를 부르짖고 말았다.

198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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