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부부사이 꽁트*꽁트



부부사이 



육교 위를 걷다가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어쩔 줄을 몰랐다. 주위는 이미 어두웠고 몇몇 상점들만이 불빛을 밝히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결혼식을 내년으로 미루는 대신 반지를 해주기로 했는데 그만 깜빡했다. 게다가 술 먹느라고 잊었다고 하면 얼마나 섭섭할까. 주머니 속을 뒤졌다. 지폐다! 반가움에 꺼내 보니 어스름불빛아래 보라색 종이 한 장이 비웃는 듯 바람에 펄럭인다.


“자, 반지요! 반지! 평생을 써도 변하지 않는 진짜 반지요-.”

육교 위에서 한 청년이 외치고 있었다.
그래, 저거다! 임시변통으로 천 원짜리 한 장과 동전 몇 개로 겨우 사정해 샀다.


“어머? 다이아몬드 아녀요?”

아내는 늦은 귀가로 인해 뿌루퉁해 있다가 반지 곽을 내미니 금세 환호성을 질렀다.

길거리의 반지라고 해도 보증서까지 겸비한 것이기 때문인지 아내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이내 놀란 눈으로 이 비싼 걸 왜 샀느냐고 되물었다. 적당히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실적이 올라 포상금을 받았노라고.


“여보, 여보! 글쎄, 뒷집 영화엄마 있잖수. 글쎄, 이 반지 때문에 부부싸움 했다지 뭐예요?”

며칠이 지났을까.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걸 동네방네 다 자랑했단 말이야?”

필요이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아내의 허영심을 나무랬다.


“아니에요. 아까 낮에 당신 조끼를 뜨고 있는데 영화엄마가 왔다가 내 손을 보고 무슨 반지냐고 묻기에…….”

“다신 그런 짓하지 마.”


“근데 당신 이 반지가 뭐 도둑물건이라두 돼요?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아내의 볼멘소리에 뜨끔했지만 짐짓 태연한 척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저러나 들통 나서 큰 싸움 벌이기전에 바꿔놔야 하는데……. 하필이면 다이아몬드반지를 샀을까, 후회했다. 금반지였으면 수월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컸다.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아무리 색이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고…….
여태
결혼식도 못 올리고 아내를 데려온 것에 대해 괜한 미안함과 아울러 자신에 대해 힐책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방문을 열고 들어서서 이상한 방안공기에 물었다.
아내는 무슨 일인지 속이 상해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애는 또 왜 그래?”

딸아이가 잠결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아내는 여전히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아니, 남편이 왔는데 쳐다보지도 않는 거야?”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심상치 않음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 짜증이 났다.


“에고-. 나 같은 게 무슨 팔자에 반지를 끼겠다구.”

아내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일어섰다.


“무슨 소리야, 그건.”

“무슨 소린 무슨 소리야요. 알량한 당신 딸이 반지를 잃어 버렸지 뭐예요.”

아내는 너무나 속상했던지 목소리까지 떨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하도 속상해서 몇 대 때렸더니 속이 편치 않아요.”


“아-니, 당신 그 가-.”

근 6개월이나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을 떠올려 하마터면 그까짓 가짜반지 잃어버렸다고 애를 팼냐고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러고 보니 그 원인도 완전히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애를 때리면 그 애가 뭘 알아.”

“빨래를 하느라고 잠시 벗어 놓았는데 그새.”

아내는 아까운 듯이 자꾸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잘 찾아보지 그래. 밖으로 안 나갔으면 집안 어디엔가 있을 거 아냐?”

“하수구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하수구까지 뜯어내고 봤는데, 괜히 주인아줌마한테만 미안하게 됐지 뭐예요.”


“또 하나 사지, 뭐.”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됐다 싶어 아내를 달래려고 괜한 허풍을 떨었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


“당신, 반지 하나 또 사준다구요?”

“응.” 

아내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영 잠이 오지 않는지 내게 물었다.


“당신, 나한테 미안한 감 들지 않아요?”

“왜.”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섬뜩했다.


“사실은 당신한테 고백할 게 있어요.”

아내는 목소리를 죽여 말했다.
고백? 실은 나도 이왕지사 지난 일이니 이제라도 털어놓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게 고백할 일이라니 뭘까? 궁금해서 죽겠는데 일부러 태연한 척 재촉하지 않았다.


“실은-,”

아내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아내의 고백을 듣는 순간 화를 낼 수도 또 가만있을 수도 없었다. 아내는 6개월 전에 이미 그 반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았단다. 일주일도 안됐는데 색이 변하고 이상해서 알아보았다며 처음엔  괘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단다. 그렇지만 내가 곤란해 할까봐 그와 똑같은 것으로 금은방에서 사왔다며 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지만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다 뭉클해지잖아요. 색은 자꾸 변하지, 그래서 궁리 끝에…….”

아내의 그 고운 마음에 고맙기도 하고, 목돈을 헐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1984.10

 

[꽁트*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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