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컷이냐, 컵이냐 꽁트*꽁트



컷이냐, 컵이냐



드디어 면접날이다.
어젯밤에 정장을 입을 것인지, 아니면 캐주얼차림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 고심한 것이 허사였음을 면접시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 생각이 적중했음에 안도감마저 느꼈다. 면접은 두 사람이 한조로 보았다. 기자가 된다는, 그것도 수천 명의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기대감에 들떠 숨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비록 학생이지만 기자라는 직함에 떨리기조차 하였다. 신문사 안은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것이 마치 시장바닥과도 흡사했다. 제각기 편한 차림으로, 더군다나 면접을 행하는 교수들도 옷차림 따위엔 전혀 무신경한 것처럼 보였다.


면접은 두 번을 통과해야 하는데 첫 면접에서 나와 함께 들어간 녀석은 어이없게도 그 자리에서 패기가 없다는 이유로 탈락되었다. 이 조직에서는 겸손이나 얌전함이 인정되지 않는 듯한 착각마저 들어 내 차례에 이르자 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성찬식. 음-, 미대학생이네?”

그 여자는 자못 흥미롭다는 듯이 서류철을 훑어 내려갔다.

그녀가 의아해하는 이유를 후에 알았지만 그 당시로선 탈락되는 줄만 알았다. 대체로 예능계학생들은 이런 일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성실하지 못한 인상이 내게도 풍기는지 어쩐지 자세히 관찰하더니, 대뜸 출석일수를 물었다.


“한 번도 수업시간을 빼먹지 않았는데요?”

“한 번도 땡땡이를 치지 않았단 말이지?”


“네-.” 

그녀는 자기 왼쪽 뺨에 콩알만 하게 난 점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물었다.


“그럼 컷은 그려봤나?”

“컵이요?”


“그래, 컷 말이야.”

“그럼요. 컵은 기초에 불과해요. 미대생치고 컵을 그리지 못하는 학생은 없어요.”


“그래?” 

그녀는 반갑다는 투로 웃음기를 보였다. 나는 손으로 땀을 훔쳐냈다.


“그럼 얼마나 그렸어? 고등학교 때도 컷을 그려봤나?”

“네.”


“그럼, 신문은 관심 있게 보는 편인가?”

“네. 1면부터 차례대로 봐요.”


“오호. 그럼 오자도 발견하겠네? 오자는 보통 몇 개나 발견하지?”

“오자요? 부지기수죠. 그러나 뜻이 와전되는 정도는 아니니까 그냥 읽어요.”


“수도 없이 많다구?”

“네.”

그녀는 또 한 번 놀라더니 이내 인상을 쓰며 또 그 콩알만 한 점을 만지작거렸다.


“어느 면에 가장 관심 있나?”

“주로 1면부터 끝까지 보지만 문화면에 치중하는 편이지요. 전공 탓도 있지만.”


“그래? 문학에도 관심 있나 보지?”

“네. 문학이라기보다 연극이나 각종 평론에도 좀…….”


“그런데 정말 오자가 그렇게 많아? 몇 호 신문인지 기억해?”

나는 여기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간지를 생각하고 말한 것이 여기서 말하는 신문이란 학보를 보고 묻는 거다.  그만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면접은 무사히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주간실이라 붙인 방에서 간단한 몇 가지 물음이 있은 후에 합격했다. 일학년 신입기자는 남자가 여섯 명, 여자가 여덟 명이다.


기자실에 들어오면 보통 야단맞는 일부터 시작했다. 기합이나 원고 뭉치로 불문곡직 얼굴을 맞는 일이 일쑤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자선배를 둔 덕분에 좀 덜한 편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굴욕적인 일도 겪어야했다. 일을 시킬 때는 그렇다고 해도,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킬 때도 당연히 명령했다.


“야! 신입! 밥 먹게 물 떠와!”

매사 이런 식이다. 그런대도 희한한 일은 일단 기자실 밖에서 만나면 전의 그 태도가 싹-, 바뀌는 거다. 딱딱거리던 말투가 누나나 이모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런 태도가 가끔은 징그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두 얼굴의 사나이가 아니라 두 얼굴의 여자 같았다.


나는 주로 문화면을 담당했는데 문화면이라야 주로 문예지의 성격이 짙었다. 그래서인지 선배들도 대부분 문학이나 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꼭 일에서 만나면 매사에 종처럼 부려댔다.


“성 기자!! 가서 게라지 나왔나 보구, 미다시 뽑아서 5호로 심어!”

처음 인쇄소에 갔을 때다.

무슨 말인지 몰라 엉기적거리는데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대선배 격인 취재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군기(?)를 잡는다고 매사에 가르쳐 주기 전에 우선 엄포부터 놓아 기죽게 만들기가 일쑤다.


“뭐해? 다 심구 이렇게 빈둥거리는 거야?”

대충 짐작으로 게라지는 교정지(교정을 하기 위한 예비신문)를 말하는 것이고, 미다시는 소제목쯤으로 감을 잡았으나 대체 뽑고, 심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렇듯 매사 눈치로 때려잡기 식이 아니면 어깨너머로 훔쳐 배우는 게 고작이다. 모르면 기합 받고, 분위기에 기죽고, 때로는 무능력으로 찍히는 거다. 일단 무능력으로 찍하면 2학년으로 올라갈 때 수습기자 딱지도 떼지 못하고 그대로 탈락하는 거다.


기자생활을 한지 한 달쯤 되자 나를 면접한 그 여자가 일거리를 지시했다. 그녀의 직함은 총무 겸 주간비서다. 선배기자들은 이상하리만치 그녀 앞에서는 지나치리만큼 쩔쩔맸다. 그 까닭은 한번 밉상이면 그대로 쫓겨나거나 골탕을 먹는다는 거다.


“성 기자! 이번 신문엔 컷을 그려야해!”

“네?” 


나는 깜짝 놀랐다. 느닷없이 컷이라니? 게다가 피할 수 없는 그녀의 엄명이라니 정말 놀랐다.

“놀라긴, 다음 학기부턴 만화는 물론 만평까지 그려야 해.”


“컷이요? 만화요? 만평이요?”

“아니 컷도 몰라? 삽화 말야.”


“아, 예. 알아요. 근데 갑자기 왜요?”

“왜요는 무슨 왜요야-, 일본담요가 왜요지.”


“에이-, 전 컷 못 그려요. 또 그려본 적도 없구요. 물론 하면야 되긴 하겠지만, 게다가 만화까지-.”

“뭐라구?? 아니, 컷은 많이 그려봤다면서? 너 그럼 면접 볼 때 누구마냥 사기 친 거야?”

나는 사내 녀석 답지 않게 가슴이 콩콩 뛰었다.

갑자기 컷을 그리라니? 무슨 변괴란 말인가. 어리둥절했다. 한 달 전 일을 떠올리며 곰곰 생각해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이건 순전히 두 귀머거리가 빚어낸 창작극이라는 걸 깨달았다.


면접당시 총무는 컷을 물어봤는데 나는 긴장한 나머지 컷을 컵이라 들었고, 그녀의 귀엔 컷 그리는 사람이 늘 아쉬웠던지라 마침 미대생이고 보니 선입견에 그녀의 귀엔 컵이라고 말한 내 말을 컷으로 들은 것이다.


“거봐요. 언니 귀가 잘못됐다, 완전히 증명됐네. 언니 외롭지 않겠수. 괜히 그동안 우리만 심심찮게 애매한 소리 들었잖아? 어쨌든 언니, 남동생 생겨 반갑겠수…….”


순간 기자실이 떠나가도록 폭소가 터졌다. 기자들은 그 후로 일에 난관이 부딪치면 ‘컷이냐? 컵이냐?’ 이것이 문제로다, 하며 키들거렸다. 그 때마다 총무는 얼굴에 난 콩알만 한 점을 만지작거리다가 그 점에 나와 있는 털을 뽑아대며 나를 서서히 미워하기 시작했다.

1984


[꽁트*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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