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윙크작전 꽁트*꽁트


 

윙크작전



그 사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한 달이 지난 후부터다. 그이의 기막힌 윙크작전에 내가 말려들고 만 것이다. 지나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재빨리 눈인사로 윙크를 보냈다. 게다가 그 은근한 웃음을 보노라면 마음이 움찔, 하고 요동쳤다. 


그이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만 마주치면 윙크공세를 퍼부었다. 번개보다 빠르게 보내는 기묘한 윙크는 정말 일품이다. 잠시 넋이 나갈 정도다. 윙크대회가 있다면 특별상을 받고도 남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윙크를 처음 받았을 때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바람둥이일거라는 억측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학교를 졸업하고 갓 입사한 내게 그토록 멋진 사내가 내게 연정 같은 걸 품을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몇 주일. 드디어 그에게 데이트 신청이 왔을 때 나는 그 사내가 꽤 단수가 높고 지능적이며 낭만적인 냄새를 폴폴 풍기는 연애주의자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에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우연과 필연’의 법칙을 잘 살려야 골인할 수 있다는 과선배의 말이 떠오를 만큼 그는 치밀하게 나름대로 작전을 세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윙크공세, 그 다음엔 썩 어울리는 은근한 웃음, 다음엔 사과선물을? 그 다음엔 뭘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일보다 윙크남과 마주치기를 고대했다. 그러더니 한동안 그 사내가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인가, 궁금증이 커질 무렵 쪽지를 보내왔다.


‘가을을 몽땅 드립니다. 지난번 첫 가을의 선물은 잘 받았으리라 생각하며 붉은 사과처럼 내 가슴도 불타고 있는 이 가을에 하늘은 참 맑기도 합니다, 그려.’


끝에 전화번호가 눈에 띄었다. 당황하기도 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같은 과에 있는 박 언니한테 의견을 물어봤다. 박 언니는 3년 선배다. 우리들에게 언제나 잘 대해주는 너그러운 인품에다가 비밀은 철저히 보장해 주기 때문에 신참인 우리들의 고충을 가끔 들어주었다.


언니는 이 쪽지의 주인공이 누구냐며 ‘수상한데? 수상해……’ 하며 짓궂게 농담을 했다. 언니는 멋지다며 당장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쉽게 용기가 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그 사내에 대해서 아는 거라고는 거대한 이 회사에 낙하산(?)을 타고 들어 온, 학벌이 꽤 화려한 사내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몰랐다.


어쨌든 이 사내가 내게 향하고 있는 호의만으로도 가슴이 콩콩 뛰었다. 가끔 수다스런 이 양이 악의 없는 농담으로 내 마음을 쿡쿡 쑤셔댔지만 태연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도 모를 테니까.


“송일환 씨 있잖아, 언니!”

이 양이 그 사내의 이름을 말할 때까지도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근데, 왜?”

“그 사람 웃겨. 소년같이 말이야. 아이구, 우스워! 요즘도 그렇게 순진한 남자가 있는지 우스워죽겠다니까?”


이 양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배를 잡고 깔깔댔다. 이 양은 틈만 나면 그 사내 이야기를 하며 혼자 어찌나 신나게 웃어대는지 조바심에 괜히 불쾌해질 때조차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하고 마음을 달래도 왠지 마음에 걸려 좀 불편했다.


“도대체 뭐가 우습다는 거야?”

하루는 이 양에게 다그치자 그건 비밀이라며 조만간 애인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의기양양했다.

애인이라는 말에 공연히 애가 타기도 하고, 이 양의 그런 행동에 공연히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입사했는데도 이 양은 전혀 어색함 없이 사회생활을 잘해 나가는 반면에 나는 늘 뒤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양한테 자극을 받아서일까.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바라보았다. 호흡을 멈춰가며 천천히 다이얼을 돌렸다.


“뚜-우-ㄱ, 뚜-우-ㄱ”

한참 만에 수화기에서 윙크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고 여보세요만 되풀이하는데 그 사내는 도무지 눈치도 없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자기이름을 말했다.


“자재과의 신 양인데요-.”

겨우 말했다.

그러면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상대방은 능청이라도 부리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좀 어이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딱딱하게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했다.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시기에 이 가을에 전화가 잘되는지 한번 해봤을 뿐이에요.”

화가 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해서 얼굴에 열이 올랐다.

전화기를 꽝-, 소리가 저쪽에도 잘 전해지도록 내동댕이쳤다.
기대하던 마음이 무시당한 거 같아 실망이 되자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도 여전히 내게 윙크공세를 퍼 대서 종잡을 수 없었다.
뭐야? 그 쪽지는? 전화번호를 알려준 건 전화해달라는 거 아니었나?
무슨 일이냐고? 생각할수록 기분이 상했다.


그런 뒤에도 윙크를 할 때마다 이건 뭐야? 이거 뭐 좀 뻔뻔한 거 아닌가.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까지 버리지는 못하고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우연과 필연의 법칙을 내세울 법한데 그 사내는 도무지 그런 내색이 보이지 않는 거다.


마음을 접고 좀 진정이 될 때쯤 그 사내가 데이트신청을 했다. 언제 기분이 나빴나, 싶게 내내 시간이 빨리 가기만 고대했다. 이때야말로 그 멋진 윙크사내를 알아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드디어 일은 데이트신청을 받는 직후에 터졌다. 늘 우리들을 웃기기도 하고 때론 피곤하게도 만드는 이 양이 폭탄을 터뜨렸다.


“언니, 글쎄….”

채 말을 잇지도 못하면서 박 언니를 행해 격앙된 목소리로 꺽꺽대다가 나중엔 울음을 터뜨렸다. 이 양이 분한 목소리로 험담하는 사내가 바로 그 윙크남이어서 좀 놀랐다.


“무슨 말이야?”

“그래, 그래!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해봐.”

내 이야기를 들은 박 언니도 어리둥절한 모양이다.


“글쎄, 나만 보면 윙크를 하는 거야. 처음에는 그냥 웃고 지나쳤거든. 그러다가 지난번에는 나도 윙크를 했어. 그러니까 괜히 얼굴을 붉히잖아.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이 순진해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좀 전에 만났기에 또 윙크를 했거든. 그랬더니 아주 불쾌하다는 듯이 문을 쾅 닫고 들어가더라고. 부끄럼도 잘 타는가, 했어. 근데! 글쎄, 글쎄, 그게 아니잖아.”


이 양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그 사내를 욕했다.
알고 보니 그 자식 나한테만 그 짓하고 다닌 게 아니잖아. 나는 이 양만큼 화가 났다.


“그래서? 근데 왜 울고 들어왔어?”

다급하게 소릴 쳤다. 텅 빈 사무실에서 우리들은 점심도 잊고 이 양의 이야기에 열중했다.


“그런데 아까 손 씻고 나오다가 또 마주쳤지 뭐야. 나는 그가 윙크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윙크를 하고 싶어서 했지. 그랬더니 다짜고짜 나를 확, 째려보면서 때릴 듯이 밀치더라고-”

그러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우리는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랐다.


“글쎄 뭐라구 하는지 알아?”

이 양은 눈이 충혈 된 채 계속 웃으며 뜸을 들였다가 말했다.


“눈을 부릅뜨고 나를 딱-, 치더니 ‘왜 남 흉내를 내고 다녀!’ 하잖겠어? 그러더니 가버리더라구. 내참 기가 막혀서!!”

1984. 

 

[꽁트*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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