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직도 혼자 사는 사람들 칼럼-나는 나

 

 

아직도 혼자 사는 사람들



"야! 너, 혼자 살지!!"

어떻게 알았지?

 

운전면허를 따고 3년 동안, 나는 '스피드'를 즐기는 '스피드광'이었다. 고속질주의 쾌감, 자신 있는 운전, 남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고 무용담을 늘어놓듯 그 곡예의 묘미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묘미의 한 순간에 놀란 운전자가 다음 번 신호등에서 나란히 서게 되자 항의를 했다.

 

"야!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앙?"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모두 차 창문을 열어 어떤 미친 여잔가 하는 얼굴로 무언의 질책을 했다.

 

"예, 예, 죄송합니다."

내 운전 솜씨(?)에 놀란 그분께 거듭 미안함을 사과드렸다.

 

50대로 보이는 차주인은 쉽게 화가 누그러들지 않는지 나의 몰상식한 급차선 변경에 놀라 신호가 바뀔 때까지 거의 미친 듯이 악을 썼다. 차안엔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린이까지 한가득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신호는 왜 그리 안 바뀌는지. 미안하기도하고 주위에 있던 다른 차량들의 시선에 창피스럽기도 해 신호가 바뀌자마자 도망치다시피 달려 나갔다. 그런 내게 마지막으로 퍼부으며 하는 말이 '야! 너, 혼자 살지!!'다. 무식이 부른 만용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을 모르고 그야말로 '앗! 어떻게 알았지?' 했다.

 

그 차원 높은 말을 이해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처음엔 아는 사람인가 해서 고심했다. 그도 아니면 내 얼굴에 문신같이 표 나는 게 있나 해서 거울도 보고, 나중엔 내차를 의심하기도 했다. 혹 혼자 사는 사람의 얼굴이나 차에는 무슨 특이한 표가 나나 싶었다. 그러다 문득 그 날, 차안에 가득 메우고 앉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행복한 나들이 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미친 여자 하나 때문에 내 가족 모두가 죽을 뻔'했다는 아찔함에 화가 치밀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 하나와 차안의 가득한 시선들을 생각하자 갑자기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혼자 생각에 잠겨 어찌나 창피하던지.

 

초보시절 한 일주일가량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운전을 했다. 긴장으로 언제나 온 몸엔 땀이 흥건했다. 한 달쯤 지나자 틈만 나면 속력을 냈다. 그리고 6개월쯤 되었을 땐 틈을 만들어 가면서까지 스피드를 즐기다 보니 속도감이 무력할 만큼 '아무 이유도 없이' 방방거리며 타고난 '스피드 꾼'답게 운전을 했다. 누가 옆에서 '운전 참 잘한다'고 치켜세우면 괜히 신이 더 나서 무슨 묘기라도 보여줄 것이 없나 궁리를 했다. 

 

언덕길을 전속력으로 달려 내리막길에 다다를 때 순간적으로 잠시 허공에 떠 떨어지는 그 맛은 스릴과 혼연일체의 쾌감이다. 고가도로를 달리면서 언제나 그대로 하늘로 떠서 영원한 잠에 빠지는 상상으로 아찔아찔한 오르가즘이 온 몸을 파고들었다. 퇴근 후엔 거의 광신자처럼 악을 쓰며 밤마다 차를 몰고 돌아다녔다.

 

한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내리는 호남고속도로를 120km로 달리고, 순간 속도 140km까지 달리기도 했다. 비상등을 불빛 삼아 7~8대가 그런 상태로 달렸으니 모두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지 싶은 생각을 한다. 쓸데없는 무용담을 늘어놓는 재미에 빠지고, 무용담을 과시하기 위해 무모한 속도 갱신을 업적으로 자랑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임진각까지 가는데 보통 1시간쯤 걸리는 거리를 30분 만에 갔다느니 20분 만에 돌파했다느니 하며 시간을 재고, 그 피곤의 여세를 몰아 집에 돌아오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 무모한 일이라고 어느 누구도 지적하는 사람도 없었고, 오히려 특이한 수면제라고 선망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당시 내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다 혼자 사는 사람들만 득시글한 모양이다.

 

정말 혼자 사는 사람만의 무식한 용기(?)였다. 그러면서 항상 내 마음속에는 '나는 절대 사고를 안 낸다'는 터무니없는 신조로 차를 몰았다. 이상하게도 차사고가 나지 않아 그 괴이한 신조가 딱 들어맞았다. 멀쩡히 운전하다가도 해만지면 과속, 난폭운전을 하면서 정말 두려움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잠재의식의 저 밑바닥에는 '나 하나쯤은 죽어도 아쉬울 것 없다'는 이기심과 삶의 허무가 당당(?)하게 있었다. 후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 그분의 질책이 내 운전 습관을 완전히 바꿔 놓은 교훈이 됐다. '그래, 나는 정말 <완전히> 혼자 사는구나' 하고 말이다. 게다가 어쩌면 남의 목숨, 남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리는 악마 같은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했구나.

 

죽지 못해 환장한 자세로 운전한 것도 모르고 온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니……. 그 동안 굳어버린 운전습관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대신 혼자 살지 않기 위한 마음을 되찾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피를 나눈 가족들, 나를 아끼는 스승님, 언제나 격려를 해 주는 친구들……. 하나씩 얼굴을 떠올려 마음에 새겼다. 내 가슴속에 이렇듯 대식구가 자리하고 있으니 나쁜 운전습관을 조금씩 고칠 수 있었다.

 

'평생 초보운전의 마음으로 모범운전자가 되겠다'던 완전초보시절의 마음도 찾고, 바쁜 생활사 잊고 지내던 소중한 것들을 마음에 간직하니 저절로 무식한 병이 나았다. 그리고 그 동안 무식하게 운전을 하면서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은 운전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많은 운전자들이 '방어운전'을 한 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뒤늦게 나는 그 날의 말 한마디, '너, 혼자 살지!'로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 이후로 난폭운전, 스피드광은 사라지고 안전운전을 실천한 덕에 마침내, 1995년엔 당당히 '그린카드' 대열에 끼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예전의 나와 같이 난폭, 스피드광인 운전자를 마주치면 '아직도 혼자 사는 모양이군' 한다. 무서운 게 없어서 용감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예사롭지 않다.

 

더러는 혼자서 살 뿐만 아니라 무식하기까지 해서 무사고 경력 7년째(1996)인 나까지도 아찔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그 날의 일이 떠올라 '아직도 혼자 사는 무식쟁이군' 하고 속으로 되뇐다. 만약 아직도 예전처럼 스피드를 즐겼다면 당연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테고, 어쩌면 남의 불행을 곱씹으며 인생을 마감하는 비참한 목숨이 되었을 것이다.

                  


[칼럼-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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