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아끼다 똥' 된 사연 칼럼-나는 나



'아끼다 똥' 된 사연

 

'아끼다 똥'된다.
내 경우가 그랬다. 살면서 '아끼다 똥'되는 경우가 어디 하나뿐이랴. 세월이 지나 똥 된 사연 하나가 지금까지도 아까워서 마음에 남아있다. 사람마다 여행을 하거나 좋은 장소가 있으면 누구와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가고 싶은 장소가 세 군데 있어 아껴 두었다.


뭐 굉장한 장소라거나, 쉽게 갈 수 없는 데도 아니다. 한강유람선, 쌍룡열차, 한국 민속촌이다. 그것도 꼭 사랑하는 이와 함께 가고자 아껴 두었으니 그 장소를 가는 일은 그리 흔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간에 갈 일이 왜 없겠느냐 만은 다 아껴 둔 탓에 어느 한 군데도 선뜻 발걸음을 내딛기 쉽지 않았다. 마음을 앞세워 갈 수 있는 사람을 못 만난 탓이다.


떠나간 사랑을 아쉬워하다가 33살 때, 드디어 함께 가고 싶은 임자를 만났다. 사랑을 만났다는 흥분이나 행복감보다 더 기뻤다.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그리던 곳을 함께 갈 수 있다는 기대에 생각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한강유람선에서 강바람을 맞으며 사랑의 고백과 함께 청혼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추억일까. 쌍용열차를 타며 짜릿한 스릴을 함께 공유하는 건 또 얼마나 신날까. 한국 민속촌에서 손잡고 거닐며 결혼생활의 미래를 그리는 시간을 보낸다면 참 멋지리라. 나중에 이곳에 대해 '옛날에 너희들 엄마, 아빠가 사랑을 고백하고 데이트를 즐기던 장소'라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상상을 하고 혼자 뿌듯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나고, 하루 종일 내 옆에 머물고, 잠자리에 들어서 맨 마지막까지 떠오르는 사람-, 이것이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얼까 싶어 어느 날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열어 보였다.


"그런 걸 뭘 망설여. 당장 가자구!"


호기 있게 말하는 그이가 좋았다. 놀린다거나 빈정거리는 태도를 보여 마음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더군다나 자기도 그런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고 하니 나로서도 기쁜 마음이 두 배로 컸다.

그런데 내 꿈은 도착해서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깨져 버렸다. 겨울이 끝나는 무렵이어서 우리는 세 군데 중에 한국 민속촌을 정하고 떠났다. 일요일인데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풍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뭐, 이래!"

첫마디부터 심상치 않더니 기어이 일이 터졌다.

"다 그 집이 그 집이구만?! 뭐, 별 볼 것도 없네!"


투덜거리며 내 손을 놓고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영화 속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대했던 것처럼 손잡고 돌아보는 건 고사하고, 세 번째 가옥에 들어서서는 한 발 물러선 채로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런 걸 보자구 그랬어? 내, 참! 난 또 뭐 대단한 거라구! 어서 가자! 다 보려면 하루 해 지겠다."

나중에는 아예 대문 밖에서 기다릴 테니 혼자 보라며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나 저기 가 있을 테니까 다 보고 나면 저기루 와. 으이구, 춥다!!"


결국, 네 번째 집 앞에서 휑하니 농악놀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버리고 말았다. 같이 가자고 했으면 내 마음이 좀 풀어졌을까? 미처 뭐라고 대꾸할 새도 없이 날쌘 제비모양으로 저 만치 혼자 갔다.
민가와 농가, 대갓집은 물론이고, 집집마다 구조도 다 다르고, 살림살이도 약간씩 다르던데 어떻게 이 남자의 눈에는 이 집이 다 그 집으로 보였을까, 하는 아쉬움보다도 배신감이 먼저 몰려왔다. 마치 어릴 때 모래로 애써 지은 집을 동네 개구쟁이가 한발로 깔아뭉개고 비웃음을 받은 기분이 절로 들었다.


나머지 집들을 어떻게 보고 돌아다녔는지 속상한 채로 관아에 도달해서는 급기야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계속 혼자 울먹울먹하며 다니던 끝에 어둠 속에서 춘향이가 목에 칼을 쓴 채 흉물스럽게 머리 풀어 헤치고 앉아 있는 곳에 이르자 설움에 복받쳐 꺽꺽 소리가 나왔다. 구경하며 춘향이 치마폭에 동전을 던지려고 다가왔던 사람들이 미친 여자 아닌가 싶어 흘긋흘긋 훔쳐보았다. 그냥 이대로 혼자 가 버리고 말까, 고심했다.


한국 민속촌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건축양식에 대한 설명 등을 기대한 건 물론 아니다. 단지, 그 동안 아끼기만 해 밟아 보지 못한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이 무참히 깨졌다는 사실이 슬펐다.


더 이상 돌아다닐 기력도 없이 슬며시 부아가 났다. 이 남자는 내가 오는지 가는지 아랑곳없었다. 마음 편히 혼자 흥이 나서 발장단에 어깨까지 으쓱거리면서 손뼉치고, 흥흥 하며 흥겨운 모습이 먼 곳에서 보아도 느낄 정도였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한 50여명이나 될까? 그 사람들 중에 그 남자의 모습이 한 번에 들어오자 더 속이 상했다. 가까이 가서 옆에 섰는데도 눈치를 못 채고 연신 온 몸을 흔들며 추운지 더운지 상관없는 몸짓이다.


"어? 왔어?"

참다못해 옷자락을 잡아끄니 흘긋 보고는 아쉬운 듯 발걸음을 돌렸다. 영락없이 나쁜 짓 하다 엄한 부모에게 걸려 돌아서는 모습이다. '아니, 벌써' 왔느냐는 표정이다. 겨울 해라 벌써 날이 어둑어둑 해졌다.


"어-! 춥다!! 빨리 가자!"

풍악놀이를 같이 보면 큰일 나는지 여태 잘 놀다가 갑자기 춥다며 뛰었다. 이런 억울한 낭패가 있나.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한국 민속촌에 왔는지 아무 의미도 없이 끝난 한국 민속촌 나들이였다. 운전하고 오는 동안에도 우린 서로 말이 없었다.


"춥다. 히터 좀 틀지?!"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픈 줄 몰랐다. 눈발이 성기더니 곧 눈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길을 운전하고 가자니 눈물이 자꾸 났다. 히터를 켜서 몸이 나른해진 남자는 아예 의자를 맘껏 뒤로 제치고 옅은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다. 밖엔 탐스런 눈이 내리는데…….


나중에 남자는 무조건 화 풀라고 아양(?)을 떨었다. 끝끝내 내가 왜 속이 상한 지, 아니 속상한 지도 모르고 무조건 화 풀라는 소리만 되뇌었다.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약탈당한 기분이 이럴까? '아끼다 똥'된 사연치고는 참 씁쓸하다.

어디쯤 <아끼다 똥> 말고 <아끼다 황금>되는, 그런 분 계셔요?



[칼럼-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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