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에 대한 회고록
알다시피 나는 회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회>라는 글자만 봐도 군침이 돌아 저절로 침이 질-, 나오는 중증환자다. 오죽하면 ‘회의 합시다!’란 말만 들어도 그 때부터 회가 동해 눈앞에 회 접시가 오락가락 한다. 아니 혀가 다 알알하게 당겨서 죽을 맛이다. 회장실은 번번이 회 먹는 방으로 착각할 정도니, 회장님을 보면 자연히 ‘회 많이 먹는 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미식가인가 하면 전혀 아니다. 그냥, 천성적으로 날것을 좋아할 뿐이다. 광어를 시켰는데 도다리가 나와도 맛을 구분하기는커녕, 광어와 도다리의 생김새 구분도 못한다.
그야말로 무작정 <한 회>만 하는 것이다. 그저 먹는 재미에만 빠진 날보고 알 만한 사람들은 <회구신>이라고 한다. 별명치고는 좀 뭐하다.
"에구, 내가 널 설어서 시장에 멍게, 해삼이 그렇게 먹고 싶은데 뼈 없는 생물을 먹으면 애 서는데 안 좋다고 해서 못 먹었더니, 그게 한이 돼서 니가 걸신들린 모양이다."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볼 때마다 미안해하셨다.
회를 좋아하는 게 무슨 흉일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자가 회를 즐기면 문제가 되는, 이 회만도 못한 세상에 태어난 죄 밖에 없다.
“아, 그렇습니까? 아! 반갑네요. 무지무지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십여 년 전일이다. 매번 맞선 보는 날이면 어머니는 신신당부 하셨다.
‘남자가 밥 먹자구 한다구 덥석 따라 나서지 말고…….’ 하며 처음 만난 남자와, 더군다나 맞선 보는 남자와 회라도 먹을까 봐 애를 태웠다. 맞선 보는 날 식사를 하면 깨진다는 이상한 속설을 어머니는 신념처럼 믿으신다.
그런데 나이 서른을 막 넘기자마자 정말 꿈같은 현실이 일어났다. 그 동안 만난 남자들이 ‘괜찮다, 다 괜찮다! 뭐든 잘 먹으면 좋지’ 하다가도 막상 내가 미친 듯이 회를 먹으면 그다음 날로 연락 끝-, 비난 시작이다.
그래서 남들이 알면 이상하게 듣겠지만 그날은 미리 <한 회>하고 나갔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한상회! 그 날 만난 운명적인 남자의 이름이다. 아니 한상화가 이 남자의 이름인데 이름이 문제가 아니고, 이 남자의 별명이 문제다. 지오향수까지 그득 뿌리고 나갔는데도 회 냄새를 맡았다.
“제 별명이 <왕짜개코>입니다. 하하하. 어릴 때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어머니가 먹을 걸 사다가 몰래 숨겨 놔도 귀신같이 알아 맞혀서 먹었죠. 점심엔 회를 드셨나 보군요? 신선한 바다바람 사이로 풀 향기가 나는데, 그 향기를 타고 회 냄새가 나는군요.”
그러면서 특히 생선회는 자신이 최고로 즐기는 음식이라고 열을 올렸다.
“근데 무슨 회를 드셨나요?”
“우, 우럭이라고 하던데…….”
나는 왠지 불안에 싸여 말끝을 흐렸다.
“아, 우럭이요? 그 녀석 생김새가 굉장히 우렁차죠. 완숙한 키스의 추억 같은 놈이랍니다. 하하!”
“완숙한 키스의 추억이요?”
“아, 아. 농담입니다. 이제야 진짜 제짝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
당시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이러다 잘못하면 <회구신>이 탄로나 또다시 집안 식구들이 ‘구박시작’에 나설 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결혼에 조건이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조건이기보다 희망사항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회 친구랍니다. 저같이 회를 즐긴다면 바로 O·K죠. 바다낚시도 같이 떠나고, 아! 바다 한가운데서 먹는 그 맛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짜릿하죠. 서툰 칼질 솜씨로 회 뜨면 그야말로 오색 창연한 여인들과 키스파티를 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죠.”
한상화란 남자는 신이 나서 장장 두어 시간을 ‘회 타령’을 하며 ‘한 만남’을 장식했다.
그러니 <회구신>이란 별명으로 그 동안 곤욕을 치룬 나로서는 대단한 짝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낭군님을 만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회 타령’에 동참했다. 어머니의 당부도, 그간 줄줄이 사탕으로 퇴짜 맞은 과거도 망각하고, 회 사냥에 나서서 정말 <회기애애>하게 <회>를 즐겼다.
“아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입술 두께와 혀 두께는 비례관계인 거 아세요? 입술이 두꺼운 사람은 혀도 두껍습니다. 반대로 얇은 입술은 신기하게도 혀가 밀가루 반죽해서 펴놓은 것처럼 얇아요. 핫하하하……. 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있으면 마치 딥 키스하는 기분입니다. 그 기분, 아주 섹시해요. 정말이라니까요? 하하하…….”
남자의 희한한 ‘회 논문’을 듣고 깔깔 웃으며 즐거웠다.
우리 둘은 누가 봐도 꿍짝이 맞았다. 이 남자만큼은 위선 떠는 그 어떤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품이 넉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그 날 회는 회로되 세발 낙지다. 그 유명한 세발낙지를 의기투합해서 시킨 것까지는 매우 훌륭했다. 세발 산 낙지를 먹을 때는 요령이 필요하다는 거, 여러분들도 다 아시죠? 손으로 잡아 다리를 돌돌 감아 한 입에 쏘-옥, 넣는 거 말이죠.
그런데 그만 그 세발 산 낚지를 젓가락으로 집는 바람에 어설픈 손놀림이 실수를 몰고 왔다. 아뿔싸! 그 놈이 얼굴에 들러붙어 떼어 내느라 작은 소동이 일었다. 두 손으로 막 뜯어내면서 동시에 입으로 들이밀며 우적우적 씹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찰나에 한상화라는 그 남자가 비명같이 ‘한 소리’를 했다.
“아니! 여, 여자가 무작스럽게…….”
그 후에 어땠을까?
궁금하세요?
지금도 여전히 나는 ‘한 회’를 하고, 아니 요즘은 IMF시대라 삶은 오징어, 삶은 버섯으로 ‘회 기분’냅니다. 물론 혼자서요! 동참 할 분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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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웃다갑니다..
참고로 전 낚시꾼이고..저도 회 좋아합니다~~~^^